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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시대 중심에서 무궁화 꽃을 피우다! 한서 남궁 억 선생

 

 

일제시대 중심에서 무궁화 꽃을 피우다! 한서 남궁 억 선생

 

 

도마 안중근 의사, 매헌 윤봉길 의사, 의암 손병희, 만행 한용운 선생… 이 분들이 어떤 분들인지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텐데요. 우리 지금의 생활은 바로 우리 나라의 독립을 위해 희생 하신 애국 열사들의 업적이 있었기 때문에 이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독립 운동가 외에도 큰 일을 하다 희생된 많은 분들이 있었다는 사실 또한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8월 15일, 광복 71주년을 맞아 방울이는 잘 알려지지 않은 애국 열사 한 분의 이야기를 여러분께 소개해드릴까 하는데요. 그 주인공은 바로 한서 남궁 억 선생입니다.

 

 

▮ 무궁화를 사랑한 선비, 한서 남궁 억

 

 

한서 남궁 억 선생은 무궁화를 이야기하면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분입니다. 선생은 영원히 피고 또 피어서 지지 않는 꽃, 무궁화를 사랑했는데요. 무궁화에 담긴 민족 정신을 전국 각지에 전파하고자 많은 노력을 아끼지 않았죠.

 

 

 

 

선생은 많은 저서를 통해 민족사 교육에 앞장섰고, 1910년 배화학당에 재직할 당시에는 여학생들에게 무궁화로 장식된 무궁화 자수를 수놓게 해 민족혼을 일깨웠는데요. 그 이후에는 배화학당을 그만두고 조국의 희망을 청소년 교육에 두며 강원도 홍천군 서면 모곡리에 모곡학교(보리울 학교)를 건립해 더욱 교육에 매진하게 됩니다. 모곡학교 학생실습지에 학생들과 함께 무궁화 동산을 만들어 무궁화 묘목을 재배하여 학교, 교회, 사회단체 등 전국 각지에 보내 무궁화 보급에 힘쓰고, 무궁화보급운동을 통해 우리의 민족혼과 조국애를 고취시키고자 했죠! 하지만 역시나 무궁화를 알리기 위한 선생의 노력과 현실은 그의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 우리 나라 꽃 무궁화의 수난, 무궁화사건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은 우리의 역사와 전통문화를 차례로 없애려는 큰 만행들을 저질렀는데요. 그 중 민족의 표상인 우리 나라 꽃 무궁화도 속해있었답니다. 무궁화가 안질 등 각종 질병을 발생시킨다는 거짓된 이야기와 바라보기만 해도 눈에 핏발이 선다는 소문으로 닥치는 대로 무궁화를 박해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일본 경찰은 무궁화를 마에 없애고자 신분을 위장하고 남궁 억 선생을 찾아갔지요. 신분을 의심하지 않았던 선생은 일본 경찰을 무궁화 동산으로 안내했고, 벚꽃은 활짝 피었다가 금방 지지만 무궁화는 오랫동안 피는 꽃으로 우리 민족의 역사도 끝없이 이어질 것이라는 무궁화에 대한 설명을 전하였는데요. 일본 경찰은 선생의 행동이 불온사상을 고취하는 반일적 사상이라며 선생을 체포하는 동시에 무궁화 동산에 심어진 묘목 8만주를 불에 태워버립니다.

 

 

 

 

"내 나이 칠십이고 다 산 몸이 전환을 한다는 것은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니, 어서 법대로 할 것을 바라는 것뿐이오. 나는 죽더라도 조선 사람으로 죽겠소.” 1933년 무궁화 사건으로 구속된 당시 회유를 권하는 홍천경찰서장 도미다에게 선생은 이렇게 말하며 끝까지 나라를 먼저 생각했고, 결국 1935년 병보석으로 출소할 때까지 옥고를 겪다 독립의 순간을 보지 못한 채 고향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이 일은 ‘무궁화 사건’이라는 제명으로 당시 신문에 대서특필되며 많은 사람들에게 전해졌는데요. 무궁화 사건 취조 중 기독교의 진리, 박애정신을 담은 이상적인 농촌을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비밀결사단체인 십자당(十字黨)도 발각되어 많은 인사들이 희생되었습니다.

 

 

 

 

무궁화 보급운동, 비밀결사대 십자당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민족의식을 전하고자 했던 한서 남궁 억 선생! 8월 15일 광복절이 되면 많은 애국 열사들이 떠오르지만 그 누구보다 조국의 독립을 바라며 나라를 사랑했던 한서 남궁 억 선생을 이번 광복절에는 잊지 말고 함께 기억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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