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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한 수다/건강한 물 이야기

변산반도, 천 년을 여행하다

 

 

 

 

변산반도, 을 여행하다

 

 

 

 

 

만고의 세월을 두고 켜켜이 쌓인 바위가 첩첩 산을 이루는 사이,

바람과 파도는 절벽을 깎고 다듬어 지금의 변산을 완성했다.

산과 바다를 품은 대서사시, 전북 부안 변산반도로 간다.

 

글 전수희 / 사진 양수열

 

 

 

 

 

 

서쪽 바다를 향해 뭉툭하게 튀어나온 부안의 변산반도

 

 바닷길로는 깎아지른 층층의 해안 절벽과 기괴한 바위들이 장관을 이루고 내륙으로는 그윽한 숲과 영롱한 물길을 품은 산봉우리가 울창하다. 바로 이 산과 바다가 모두 변산반도국립공원으로, 산과 바다가 한데 어우러진 지형의 국립공원은 국내에서 변산반도가 유일하다. 사람들은 157㎢에 달하는 방대한 변산반도국립공원을 공간에 따라 내변산과 외변산으로 나누어 부른다. 내변산은 산악, 외변산은 해안 지역으로 지형이 다른 만큼 여행 방법도, 만끽할 수 있는 매력도 다르다.


먼저 외변산을 찾았다. 외변산을 효과적으로 여행하려면 해안도로를 따라 가는 드라이브 코스를 선택하자. 30 분 정도 반도를 휘감아 내려가면 바람모퉁이에서 시작해 새만금방조제, 적벽강, 채석강까지 그 포인트를 모두 훑으며 달릴 수 있다. 다른 곳은 몰라도 종착지인 채석강은 꼭 내려서 걸어보는 것이 좋다. 이때 물때 시간을 알아두지 않으면 낭패를 볼 수 있으니 주의하도록. 밀물 때에는 해안가 벼랑까지 바닷물이 가득 차 채석강의 층리를 제대로 감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겹겹이 얽힌 세월, 억 겹이 밴 자연


촬영 팀이 찾은 3월 말은 저녁 8시 30분경 썰물이 최저치가 되는 시점으로 드라마틱한 일몰 속에서 채석강을 걸을 수 있는 절묘한 타이밍이다. 5시 반, 서서히 파도가 밀려나며 드러나기 시작한 채석강의 속살은 만조 시기의 단조로운 해안의 모습과 사뭇 다르다. 종이 파이의 단면처럼 차곡차곡 수만 겹 쌓아올린 절벽 아래로 파도가 조각한 넓디넓은 바위 해변이 펼쳐진다. 자박자박 절벽을 따라 걸어본다. 인간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수억 년이라는 긴 세월의 간극을 묵묵히 살아온 자연의 경이로움, 그 자체다. 격포항이 바로 내다보이는 채석강 끄트머리에 다다르면 바위 해변의 폭이 점점 좁아지고 걷는 길이 험해지는데, 바로 그 곳에 6 개의 해식동굴이 숨어 있다. 물이 빠진 해변을 휘몰아치는 바람을 피할 요량으로 동굴로 들어서니 때마침 그 앞으로 수평선 너머 지는 해가 내다보인다. 일몰을 위한 전망 창을 내놓은 것처럼 오롯하게 서쪽 바다로 지는 태양을 응시할 수 있는 시간. 해안가를 둘러본 다음에는 채석강을 거느리고 있는 나지막한 닭이봉 정상에 올라보자. 격포항에서부터 저 멀리 붉은 암벽이 인상적인 적벽강까지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또 하나, 부안에 와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곰소염전과 곰소항. 염전을 먼저 들렀다. 4월 본격적인 소금 생산을 앞두고 부지런한 염부 몇몇이 겨우내 방치해두었던 장비를 점검하고 시설을 손질하고 있다. 아직 휑한 소금밭은 희뿌연 소금 알갱이 대신 맑은 하늘과 염전을 휘감은 산봉우리를 발치에 비추며 투명한 그림을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이내 초봄 날 선 바닷바람이 수면을 지나가면 잔잔하게 이는 물결에도 사라지고 마는 아스라한 반영. 세월과 바람의 때가 덕지덕지한 낡은 소금 창고와 어우러진 염전 풍경은 여행자에게 색다른 운치를 선물한다. 염전과 바다 사이, 곰소항으로 가면 젓갈집이 천지다. 염전에서 나는 질 좋은 천일염으로 곰삭힌 맛 좋은 젓갈을 사기 위해 전국방방곡곡에서 사람들이 몰려드니 그럴 만도 하다.

 

 

 

 

 

 

아름다운 강산, 내변산

  

여행 이튿날, 내변산을 둘러보려 새벽부터 등산할 채비를 서둘렀다. 여러 갈래의 트레킹 코스가 있는데, 그중 남여치에서 시작해 직소폭포, 내소사에 이르는 길을 선택했다. 가장 대표적인 코스일뿐 더러 다양한 난이도가 섞여 제법 걷는 재미가 있는 길이다. 이동 시간만 따져도 자그마치 4시간 30여 분이 걸리니까, 쉬엄쉬엄 경관을 만끽할 요량이라면 넉넉잡아 예닐곱 시간은 예상해야 할 터.


첫 번째 베이스캠프는 월명암이다. 쌍성봉 정상 자락에 위치한 신라시대 지어진 사찰로 변산팔경 중 첫손에 꼽히는 월명무애로 이름난 곳이다. 바다 쪽으로 너울지는 능선 사이 아련하게 피어오르는 안개 바다의 장관을 두 눈에 담고야 말겠다는 일념 하나로 이른 새벽 산길을 오른다. 남여치에서 6시에 출발, 쉬지 않고 부지런히 올랐건만 8 시가 다 되어 무애를 보기에 하늘이 너무 쨍하다. 월명암 스님 말씀으론 새벽 5~6시 사이에나 펼쳐지는 풍경이라고.


아쉬움을 뒤로하고 두 번째 목적지인 직소폭포를 가기 위해 산길을 내려간다. 내리막길임에도 경사가 가파른 데에다 바위와 자갈이 제법 많아 조심조심, 예상보다 시간을 더 지체하게 된다. 하지만 숲 너머 보이는 근육질의 기암절벽과 울창한 수풀, 그리고 산속에 폭 파묻힌 직소보 풍경 등 순간순간 숨어있는 절경이 감탄을 자아냈다. 1시간여의 우여곡절 끝에 자연보호헌장탑에 도착. 이제부터 직소폭포까지는 물길을 따라 완만한 산책길을 걷는다. 사시사철 초록 우거진 사철나무의 숲이 투영된 짙푸른 직소보를 따라 걷다보면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를 따라 물고기 떼가 헤엄쳐 따라 든다. 그리고 선녀탕을 지나 점점 더 맑아지는 듯한 물길을 거슬러 30여 분을 걸으면 장쾌한 물줄기를 쏟아내는 직소폭포에 다다른다. 어쩜 이리도 맑고 맑은지, 바닥에 뒤엉켜 있는 나뭇잎까지 훤히 들여다보이는 물속에 화창한 하늘이 그대로 어리면 그 청명함이 극치에 이른다.

 

 

 


직소폭포 아래에서 한숨 돌리고 발길을 내소사로 돌린다. 1시간여 남짓 내소사 입구, 하늘을 찌를 듯 30~40m 높이의 아름드리 전나무가 일렬종대로 울창한 터널을 이룬 길이 이어진다. 백제 무왕 때 창건된, 지은 지 무려 1300 여 년이 된 고찰 내소사는 그 역사에서 뿜어져 나오는 고즈넉함이 그야말로 장중하다. 1 천 년 된 거대한 느티나무를 지나 봉래루 아래를 통과하자 석탑 뒤로 단정한 대웅보전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많은 세월을 견디며 지워져 이제는 흔적만이 희미하게 남아 있는 단청이지만 도리어 나무 본래의 색이 단아한 기품을 뽐낸다. 천 년의 세월을 돌아 그 역사와 자연을 거슬러 여행하고 돌아오는 길, 변산의 감동은 여전히 긴 여운을 남긴다.

 

 

K-water 뉴스레터 4월호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