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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한 수다/건강한 물 이야기

무채색의 겨울이 물러나니 노란 꽃구름이 일더라


이영무 계장, 이지현 대리와 함께 떠난 구례 여행

무채색의 겨울이 물러나니 노란 꽃구름이 일더라

3월 중순, 겨울과 봄을 오락가락하는 변덕스러운 날씨 속에서도 남녘에는 어김없이 봄이 찾아왔다.

4월호 여행지는 꽃샘추위에 한껏 움츠렸던 산수유가 꽃망울을 터트려 노란 꽃구름을 피워 올린 전남 구례. K-water 주암댐관리단의 이영무 계장, 이지현 대리와 함께 상큼한 봄맞이를 하고 왔다.

여행 가이드 이영무 계장, 이지현 대리(K-water 주암댐관리단) | 에디터 이정은 | 포토그래퍼 문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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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은 왔으되 봄이 온 것 같지가 않다.
때 아닌 폭설이 내려 살포시 맺힌 꽃망울이 얼어버리는가 하면 장롱 속에 넣어둔 두꺼운 외투를 다시 꺼내 입게 만드는 봄 같지 않은 봄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남녘에는 꽃 소식이 한창이다. 날씨가 변덕을 부려도 수런수런 번지는 봄기운을 이길 수는 없는 모양이다.
이번 여행지는 꽃샘추위에 한껏 움츠렸던 산수유 꽃망울이 노란 속살을 드러내며 봄 소식을 전하는 전남 구례.

“멀리까지 오시느라 고생 많았소. 워매, 여그는 산수유가 활짝 펴부렀구마이. 옛날에는 산수유가 이렇게 많지 않았는디,  관광지로 개발한다고 논이며 밭에 죄다 산수유를 심었구만.”

걸쭉한 사투리가 정감 어린 이영무 계장과 이지현 대리(K-water 주암댐관리단)가 취재진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주암댐관리단에서만 15년을 근무한 이영무 계장은 이 지역을 손금 보듯 훤히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난 시절의 풍경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꽃구경이 급해 산동면의 상위마을로 서둘러 발길을 옮겼다. 해마다 산수유 축제가 열리는 이곳은 구례에서 산수유를 가장 운치 있게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산동면은 국내 최대 산수유 군락지로 전국 산수유 생산량의 73%가 이곳에서 난다고 한다.

산수유 마을은 경북 봉화에도, 의성에도, 경기 이천에도 있지만 그중 구례의 산수유를 더 쳐주는 것은 다른 곳에 비해 나무가 많기도 하거니와 가장 먼저 꽃을 피우기 때문이다. 상위마을은 산동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사랑길’로도 불리는 좁은 돌담길이 특히 운치 있고 정감이 넘친다.
이제 막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들의 필수 데이트 코스이기도 하다. 상위교에서 계곡길을 거슬러 오르다 보면 왼쪽으로 돌집 민박을 끼고 도는 돌담길이 나온다.


육군과 공군이 빠진 산채 정식, 그래도 맛은 최고!


“이곳은 물이 깨끗해서 지하수를 그냥 먹어도 괜찮아요. 오염원이 하나도 없거든요. 가축이라고 길러봐야 기껏 염소 정돈디, 요즘은 산수유 농사를 짓느라고 염소도 별로 없구만요.” 
이영무 계장은 산수유 주변으로 흐르는 맑은 계곡물을 보며 물 맑기로 대한민국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들 것이라고 말했다.

노란 꽃구름으로 눈 호사를 하고 나니 배가 출출했다. 다음 코스인 화엄사로 가기 전 산채 정식으로 점심을 먹기로 했다. 화엄사 아랫동네에는 산채정식으로 유명한 집이 많다. 그중 ‘그 옛날 산채식당’으로 갔는데, 이곳 주차장에 차가 제일 많이 주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전라도에서는 어느 음식점에 가더라도 기본은 하기 때문에 아무 곳에나 들어가도 되지만, 그래도 이왕이면 주차장에 차가 많은 곳에 가는 것이 좋다는 이영무 계장의 맛집 선정 원칙 때문이었다.

따뜻한 방 안에 들어앉으니 할머니 두 분이 한 상 가득 차린 산채 정식을 들고 들어오신다. 취재진은 감탄을 하며 정신없이 먹는데, 이영무 계장은 마땅치 않은 표정이다. 자고로 정식이라면 ‘육해공’이 모두 있어야 하는데, 해군만 있다는 것. 이영무 계장은 주암댐관리단에 있는 순천의 진일기사식당, 쌍암기사식당에 가면 ‘육해공’이 다 나온다며 꼭 가보라고 귀띔을 한다.

맛있는 음식을 포식한 후 화엄사에 올랐다. 구례에는 지리산 자락의 화엄사와 천은사, 연곡사, 문수사 등 이름난 사찰이 즐비하다. 그중 화엄사의 규모가 제일 크고 장엄하다. 백제 성왕 22년에 연기 조사가 창건한 화엄사는 <화엄경(華嚴經)>의 ‘화엄’ 두 글자를 따서 이름 지었다. 화엄사에서는 우리나라 현존 최대 목조 건물인 각황전, 각황전 앞 석등, 사사자삼층석탑, 영산회괘불탱 등 많은 불교 문화재를 볼 수 있는데, 특히 봄에는 각황전 앞의 ‘흑매(黑梅)’도 빼놓을 수 없는 문화재감이다. 꽃잎이 붉다 못해 검은빛이 감도는 흑매는 색감과 향기가 요염해 수행자의마음까지 흔들어 놓는다고. 흑매는 다른 매화에 비해 개화 시기가 늦다.

 

  
이웃에 대한 배려와 따뜻한 인심, 타인능해(他人能解)

흑매의 요염한 자태를 보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며 섬진강을 따라 운조루로 향했다. 조루는 1776년 조선 영조 때 삼수 부사를 지낸 류이주가 지은 전통 양반 가옥으로 원래 99칸의 대저택이었으나 지금은 60여 칸이 남아 있다. 300
년 가까이 된 고옥이지만 잘 보존하고 있어서 멋스러움은 여전하다.

운조루에서 눈여겨볼 것이 또 하나 있다. 곳간채 앞에 있는 쌀뒤주와 뒤주에 쓰인 ‘타인능해(他人能解)’. 양식이 없는 이는 쌀뒤주 아래편의 직사각형 마개를 열어 언제든지 쌀을 퍼 갈 수 있는 뒤주라는 뜻으로 써놓았다고 한다. 또 쌀을 가져가는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기 위해 뒤주도 집주인의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두었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다. 밥 짓는 연기를 배고픈 이웃에게 보여주지 않기 위해 굴뚝 높이도 1m 안 되게 아주 낮게 만들었다고 한다. 옛 선조의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과 따스함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1. 전북 진안에서 솟아 임실, 곡성, 구례, 하동을 거쳐 광양 앞바다로 빠져나가는 섬진강. 500리
   물길마다 아름다운 사연을 품고 흐른다.
2. 99칸 양반 가옥의 위풍뿐만 아니라 옛 선조의
이웃에 대한 배려와 따스함을 느낄 수 있는 운조루.

500리 물길마다 아름다운 사연을 담고 흐르는 섬진강

구례 여행의 마지막 코스는 화개장터.
화개장은 본래 1일과 6일에 서는 5일장이었다. 경상남도 사람과 전라남도 사람이 함께 어우러지는 화개장터는 해방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5대 시장 중 하나로 전국의 어느 시장보다 많은 사람으로 붐비던 곳이다. 이곳에 5일장이 섰으며, 지리산 화전민은 고사리·더덕·감자 등을 가지고 와서 팔고, 전라도 구례와 경남 함양 등 내륙지방 사람은 쌀보리를 가져와 팔았다.

요즘은 매일 열리는 상설 시장으로 바뀌었다. 시장터를 새로 단장했기 때문에 옛 시골 장터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순 없지만 산나물·녹차·도토리묵 등의 특산품과 국밥집, 재첩국집, 주막, 엿장수 등이 있으며 특히 우리 전통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대장간이 있어 호미, 낫 등 전통 농기구 만드는 모습을 직접 보고 살 수도 있다.

전남 광주 출신이지만 화개장터는 처음 와본다는 이지현 대리는 이것저것 구경하다 고구마 한 봉지를 샀다. 입담 좋은 이영무 계장 덕에 호박고구마도 두어 개 덤으로 얻고.
“예전에는 여름이면 회사 사람들하고 섬진강에 와서 은어도 잡고 그랬당께요. 그때는 은어도 참 많았는디….”
 화개장터 앞을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을 보며 이영무 계장은 회상에 잠기는 듯했다.

전북 진안에서 솟아나는 섬진강은 임실, 곡성, 구례, 오산을 지나 지리산과 백운산 사이로 흘러들면서 하동과 광양을 거쳐 바다로 빠져나간다. 500리 물길마다 아름다운 사연을 품고 흐르며 봄이면 물길 따라 핀 벚꽃이 꽃비를 뿌려주는 아름다운 강. 하지만 벚꽃이 피기 전 물길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봄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반짝이는 물비늘, 황금빛 실타래처럼 길게 몸을 틀며 백사장을 안고 굽이도는 강물이 조용히 봄 여행길에 길동무가 되어준다.



이영무 계장, 이지현 대리는요…
구례는 주암댐관리단 관할 지역이 아닌데도 이영무 계장이 구례 여행 가이드가 된 것은 순전히 주암댐관리단에서 15년간 근무해 이 지역을 훤히 꿰뚫고 있기 때문이었답니다. 완벽한 여행 가이드뿐만 아니라 구수한 사투리와 유머로 구례 여행을 더욱 즐겁게 해주신 이영무 계장님과 이지현 대리님. 두 분 덕분에 꽃샘추위 속에서도 남도의 봄을 실컷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 본 컨텐츠는 한국수자원공사 사보(물, 자연 그리고 사람)에서 발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