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유자적 물결치는 곡선의 유혹 '제주, 오름'에 오르다
360개의 크고 작은 오름은 나직나직하게 제주도만의 독특한 풍경과 문화를 만들어냅니다. 지질학적으로는
기생화산이지만, 제주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자 안식처인 오름. 오름에 오르면 새로운 얼굴의 제주도를 만날 수 있어요.
고조선 단군신화처럼 제주도에도 선문대 할망 창세 신화가 있는데요. 오름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아주 먼 옛날, 옥황상제의 딸 중 키도 크고 힘도 센 선문대 할망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옥황상제 몰래 바깥세상으로 나온 할망은 하늘과 땅을 둘로 나누고 그 표시로 치마에 흙을 한 줌 담아서 가져갔어요. 그런데, 이 사실을 안 옥황상제는 큰 말썽을 일으킨 선문대 할망에게 땅으로 내려가 살라는 법을 내렸지요.
땅으로 내려와 할망이 발을 디딘 곳은 육지와 가까운 바다였고, 내려오면서 치마폭에 담은 흙이 주르르 쏟아져 내려 섬을 이루었는데 그것이 제주도입니다. 그리고 쏟아진 흙이 가장 높게 쌓인 곳은 한라산이 되었고 여기저기 튀어나간 흙덩어리는 360개의 오름이 되었다는 이야기에요.
‘오름’, 그저 소나 말이 풀을 뜯던 이곳이 사람의 입에 오르내린 건 거문오름이 2007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면서부터일 것입니다. 아니, 제주도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유명한 사진작가인 김영갑의 작품 속에서 이미 숱하게 오름을 보았을 테지요.
제주도에 홀려 반평생을 안개, 바람, 비, 오름, 바다, 한라산을 찍다 루게릭병으로 요절한 사진작가 김영갑. 그는 “누구나 경험할 수 없는 한라산의 속살을 보고 싶어 하는 이에게 오름을 추천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추천을 따라 오름에 올라봅니다. 360개의 오름 중 가장 큰 거문오름과 김영갑이 그토록 사랑했던 용눈이오름에 말이죠.
▮ 세상과 단절된 깊은 숲으로
거문오름은 약 30만 년 전과 10만 년 전 사이에 일어난 화산활동으로 용암이 분출해 생긴 것으로, 용암 협곡을 통해 용암이 북동쪽의 해안선까지 흘러가면서 20여 개의 용암 동굴을 만들어냈습니다. 백록담보다 2.6배 큰 거대한 분화구 주위로 9개의 봉우리가 있고, 분화구 안에 알오름이 또 있는데요. 그 형태가 말굽형처럼 보입니다. 제주의 선조들은 여자 성기처럼 보인다고 해서 ‘암매’라고도 불렀다고 해요.
“오름은 큰 화산 옆쪽에 붙어서 생긴 기생화산의 제주도 말입니다. 제주도에는 360개의 오름이 있는데, 그중 거문오름은 가장 큰 형님이지요. 용암 함몰구와 수직 동굴, 화산탄 등 화산 활동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고 특이한 식생을 자랑하는 곶자왈이라는 생태계를 품고 있어 지난 2007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됐습니다.”
정순영 자연유산 해설사의 안내와 함께 거문오름 탐방을 시작했어요. 거문오름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후부터 자연유산 해설사와 동행해 탐방할 수 있는 것이 장점! 탐방객은 하루 400명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반드시 사전에 세계자연유산센터에 탐방 예약을 해야 합니다.
▲거문오름 탐방길
우거진 삼나무 숲을 따라 240개의 계단을 오르니 한라산과 산굼부리, 방애오름, 대천이오름, 꾀꼬리오름, 세미오름 등이 보이는 제1전망대가 펼쳐집니다. 오름은 한라산을 중심으로 동서로 길게 흩어져 있는데, 특히 북동쪽에 많아요. 넓은 평원 사이로 오름들이 불쑥불쏙 솟아 있어 독특한 풍경을 빚어내지요.
“제주의 오름은 보이는 대로, 닮은 대로, 가진 대로 이름이 붙었습니다. 자주 오르내린다고 해서 ‘오름’이고, 민머리 모양 같다고 해서 민오름, 꾀꼬리가 많다 해서 꾀꼬리오름, 가시나무가 많아서 가시오름…. 거문오름도 분화구 내 울창한 산림지대가 검고 음산한 기운을 띤다고 해서 ‘검은오름’이라고 불렸으나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면서 한자로 ‘拒文(거문)’이라고 표기했습니다.”
정순영 해설사는, 친근한 이름들처럼 오름은 제주도 사람들 삶의 터전이었다고 설명합니다. 오름은 말과 소에게 풀을 먹이는 곳이고, 오름 주변에 밭을 일구어 쌀 대신 감자, 조, 수수, 보리 등을 심어 밥을 해 먹었습니다. 4·3 항쟁 때, 중산간 일부 오름은 마을 사람들이 토벌대의 눈을 피해 숨은 은신처였지만 거꾸로 발각되어 학살당한 곳이기도 해요. 육지의 사람들이 죽어서 야산에 묻히는 것처럼 제주 사람들은 죽어서 오름 아래에 묻혔습니다.
▲오름 주변에 일군 밭
전망대를 지나 분화구 속으로 들어가자 시원한 바람이 불었어요. 오름이 숨을 쉬는 숨구멍, 풍혈인데요. 사시사철 14~16℃의 바람이 나와 겨울에는 따뜻하게, 여름에는 시원하게 해준다고 하더군요. 분화구 속은 ‘곶자왈’이라는 특이한 생태계가 형성돼어 있는데, ‘곶’은 숲이고, ‘자왈’은 돌을 말합니다. 난대식물·온대식물·덩굴식물 등 800여 종의 식생이 한데 어울려 원시림을 이루는데, 뿌리가 땅속이 아니라 돌무더기 속에 뻗어 있어요.
분화구 속이다 보니 흙이 없어 어떤 나무는 마치 문어 다리처럼 돌에 달라붙어 있기도 하고요. 걷다 보면 나무뿌리를 밟기 때문에 등산 스틱, 아이젠, 하이힐 등은 절대 금지! 오름 정상과 분화구 안에는 일본군의 병참기지와 화전민이 숯을 굽던 숯가마터도 있었습니다. 1940년 초반까지 숯을 구웠는데, 임금에게 진상할 정도로 질 좋은 고급 숯이었다고 해요.
정상과 분화구를 지나 제2전망대, 용암의 거품덩이가 공중에서 굳어져 땅에 떨어진 화산탄, 12층 아파트 깊이의 수직 동굴인 선흘동굴을 지나면 해설사 없이 탐방하는 자율 탐방 코스가 나옵니다. 봉우리 8개를 오르는 자율 탐방 코스는 한 시간 정도 더 소요돼요^^
▲거문오름 내 용암동굴
▮ 평화롭고 아늑한 고요
거문오름은 크기도 크고 원시림으로 우거져 있어 오름 형태를 온전히 보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용눈이오름으로 발길을 옮겼어요. 사실 분화구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은 용눈이오름 옆의 다랑쉬오름이지만, 경사가 가팔라 오르기 쉽지 않다고 합니다. 대신 용눈이오름은 완만한 능선길이라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다고 하고요. 또 사진작가 김영갑이 그의 갤러리인 두모악갤러리 전면을 용눈이로 채울 만큼 사랑하던 오름이 아니었겠습니까!
용눈이오름은 용이 누워 있는 모습처럼 보인다 해서 붙은 이름으로, 정말 용의 등줄기처럼 이어지는 오름 곡선이 매력적입니다. 10여 분 정도 걸어 꼭대기에 오르면 봉우리 3개가 부드럽게 물결치는데, 동트기 전 혹은 해 질 무렵 어둡지도 환하지도 않을 때곡선이 가장 잘 드러난다고 해요. 꼭대기에서 보는 전망도 일품~!
▲해 질 무렵 용눈이오름
동서남북 풍광이 모두 다른데, 북쪽으로는 용눈이오름이 만들어내는 곡선이 펼쳐지면서 그 너머로 다랑쉬오름이 불쑥 솟아 있었어요. 서쪽으로는 둔자봉 능선 너머로 한라산 정상이 보이고, 남쪽으로는 싱그러운 초록 밭이 까만 돌담과 함께 어우러졌습니다. 이어 동쪽으로 돌면 성산일출봉과 함께 푸른 바다가 펼쳐졌고요. 그야말로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풍광이 시계 반대 방향으로 쭉 이어지는 것이죠.
용눈이오름은 일출 명소이기도 합니다. 운이 좋으면 성산일출봉과 우도 사이에서 떠오르는
멋진 해를 감상할 수 있어요. 용눈이오름은 거문오름과 달리 24시간 개방하므로 언제든지 찾아도 된다는 사실.
오름에서 태어나 오름으로 돌아간다고 할 정도로 제주 사람들은 오름에 기대어 산다고 할 수 있어요. 오름은 한라산 칼바람을 막아 농사를 짓고 가축도 기를 수 있게 했으며, 지하수를 보전해 맑고 깨끗한 식수도 제공해주었으니까요. 그 유명한 ‘제주 삼다수’의 저장 창고가 바로 오름입니다! 제주를 가장 제주답게 하는 것 중 하나인 오름. 그래서 김영갑이 제주 사람들의 삶과 제주의 속살을 보고 싶으면 오름에 오르라고 했나 봅니다.
▲중간산 지역 메밀밭, 곶자왈의 식물들
“누구나 경험할 수 없는 한라산의 속살을 보고 싶어 하는 이들에겐 오름을 추천한다. 사람들을 이것저것 물어본다. 나는 대답 대신 편안하게 보고 느끼라고 대답한다. 중산간 들녘 곳곳에 원시의 건강함으로 우뚝한 오름을 마주한 적이 있는가. 차를 타고 훵하니 지나치며 일별하는 곳이 아니라 그곳에서, 그 바람 속에서 넘치는 생명의 충일한 기운 속에 버티고 서서 온몸으로 자연의 절규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앞뒤 좌우를 분별할 수 없는 막막함 속에 혼자 내팽개쳐진 절대 고독.” - 사진작가 김영갑
* 자료출처 : K-water 웹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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