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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한 수다/워터카페

(19화) History of K-water, 물 자연 그리고 사람과 함께 한 한국수자원공사_4탄

 

제 3절, 시련과 역동이 교차한 단지사업

 

K-water 브랜드 스토리! 저번 시간에는 한국수자원공사가 제조와 기업에 필요한 공업용수를 어떻게 공급하는지, 수도권의 상수도들을 어떤 방식으로 통합운영했는지에 대해 살펴보았는데요. 오늘은 한국수자원공사가 담당했던 안산시화지구 개발사업, 특히 시화호와 관련된 이야기에 대해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안산신도시, 송산그린시티, 단지사업

 

 

▮ 안산·시화지구 개발

 

- 안산 신도시 개발

 

1970년대 서울의 과밀성장을 억제하고 분산되어 있던 수도권의 공장을 집중유치하기 위해 태어난 안산신도시는 1977년에 시작하여 1993년 1단계 사업을 준공하고 1992년에 시작한 2단계 사업까지 준공 완료되었습니다. 안산신도시 조성사업은 1단계 50.7㎢, 2단계 7.1㎢ 등 총 57.8㎢의 대규모 건설사업으로 우리공사의 단지개발사업 중에서 가장 정성을 들인 사업이에요. 안산신도시 1단계 조성사업에서는 공단과 도시의 오폐수와 인근 소규모 농가에서 흘러드는 오염물질에 대한 대책이 제대로 수립되지 않아 시화호 오염으로 큰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지요.

 

2단계 조성사업은 17년 동안 사업을 시행해오면서 시민들의 의식 및 삶의 질 향상, 언론 및 대중매체의 발달, 시민단체와 환경단체의 사회적 입지 상승, 인터넷 보급에 따른 시민들의 정책 참여율 증가, 중앙정부에서 지방자치단체로 전환한 관리체제의 변경 등으로 공사 시행에서 준공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어려움을 겪어야했어요. 이로 인해 공사비도 증가하고 공사기간도 상당히 늘어났답니다. 2단계 사업에서는, 주민 편익을 먼저 생각하는 자세로 교통 및 환경영향평가를 철저히 이행하고 입주민과 안산시의 추가시설 요청에 적극 호응하여 수도권 최고의 계획도시를 구현하는 것이 최대의 과제로 떠올랐어요.

 

- 시화지구 개발

 

1976년 정부는 앞으로 매립비용이 적게 드는 수도권의 서해안지역 우선개발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습니다. 장기간에 걸친 타당성조사 결과 1985년 정부는 단지조성과 도로·용수 등 간접자본 투자 부담이 적은 시화지구를 선택하게 되었어요. 이에 따라 1986년 1월 시화건설사무소를 개설하고 전담반을 구성하여 시화지구 개발타당성 조사 및 기본계획 수립 용역에 대한 감독업무를 수행했지요.

 

같은 해 9월에는 시화지구 개발 기본계획이 고시되었으며, 10월에는「도시계획법 시행규칙」을 개정하여 개발제한구역에 대한 형질변경 및 조성단지에 대한 건축이 가능하도록 하는 등 시화지구 개발사업추진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했고요.

1987년 2월에는 방조제를 축조하기 위해 농업진흥공사와 위·수탁협약을 체결했습니다.

 

 

안산신도시, 신도시 개발, 계획도시

 

 

▮ 시련을 딛고 다시 태어난 시화호

 

 - 시화호의 탄생


시화호는 유역면적 476.5㎢, 호수면적 61㎢, 총저수량 3억 3200만㎥, 호수 중간의 최고수심 14.2m입니다. 호수면적에 대한 유역면적 배율은 7.8배로 새만금호의 24.8배에 비해 매우 작은 편. 북쪽에는 반월공단과 시화공단이 있고 서쪽으로는 시화방조제를 사이에 두고 서해에 닿아 있어요. 동쪽으로는 10㎞ 내외의 소규모 하천이 시화호로 유입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농지가 펼쳐져 있고요. 시화호유역의 인구는 120만 명에 이르며, 공장은 반월공단 2520업체, 시화공단 4506업체 등 총 7026업체가 입주해 있답니다.

 

시화호는 1994년 1월 시흥시의 오이도에서 대부도를 거쳐 화성시의 남양반도에 이르는 길이 12.6㎞의 시화방조제가 건설되면서 탄생했는데요. ‘시화’라는 지명은 방조제가 잇고 있는 시흥과 화성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것입니다. 시화지구는 1975년 농업진흥공사에 의해 처음 간척계획이 수립되었으며, 1984년 10월 건설부에서 중동 건설 붐 퇴조로 유입되는 해외 인력 및 유휴장비 활용방안을 포함하여 시화호를 복합용도로 개발하는‘국토 확장사업 추진방안’을 수립하면서 본격적으로 개발이 검토되었어요.

 

이때 환경영향평가를 제때 실시하지 않고 개발을 시작하여 결국은 ‘죽음의 호수’라고 불리는 대재앙을 초래하게 됩니다. 방조제공사는 1985년 농어촌진흥공사에서 실시설계를 마친 뒤 1986년 9월 ‘반월특수지역 개발구역 및 기본계획 고시’를 거쳐 1987년 6월부터 공사에 들어가야 했어요. 환경영향평가협의는 1988년 9월에 가서야 완료되었지요. 방조제공사는 1994년 1월 최종 끝막이 공사를 마치고 시화호를 탄생시켰답니다.

 

- 시화호의 수질 오염

 

1980년대 초 어려운 국가경제 여건을 타개할 방안의 하나로 경제계에서 시화지구 개발을 건의함에 따라 충분한 사전준비 없이 사업이 추진된 것이 사실입니다. 방조제 물막이공사를 시작하기 전에 완료되거나 병행 추진되었어야 할 안산신도시 및 반월공단의 하수처리장과 인근 유역 폐수의 호소 내 유입방지시설 설치가 되지 않은 상태였어요. 시화방조제 공사가 완료되기 이전 반월만 일원의 수질은 COD 3~4ppm 정도를 유지했으나 1994년 1월 물막이공사가 완료되면서 수질이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했습니다.

 

1997년에는 COD가 17.4ppm까지 상승하는 환경재앙이 발생~! 당초 시화호를 담수호로 조성하고자 한 계획의 가장 큰 문제점은 수량 확보가 어렵다는 점이었죠. 시화호 주변에는 큰 강이 없기 때문에 구릉지의 소규모 하천에서 유입되는 물로는 담수호 유지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 수질 개선대책 추진

 

시화호의 수질오염이 사회문제로 대두된 직접적인 계기는 1996년 4월 SBS TV의 시화호 방류현황 보도였는데요. SBS는 시화호의 방류장면을 몇 차례에 걸쳐 집중보도했으며, 이에 따라 시화호는 일찍이 국내에 유례가 없는 환경오염의 대명사로 떠오르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어요.

 

보도가 나가자 정부차원의 종합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정부부처, 학계 전문가, 국내외 엔지니어링 업체 등 관련 분야의 수많은 인력이 동원되어 2개월 동안 수십 차례에 걸친 현장답사, 자문회의 및 실증실험 등을 거쳐 결국 1996년 7월‘시화호 수질 개선대책’을 발표했습니다.

 

대책은 크게 시화호유역으로 들어오는 오염원을 차단하는‘유입 오염원 차단대책’과 악화된 시화호 수질을 개선하기 위한 ‘호소 내 대책’으로 나누어지는데, 수질을 완전히 개선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예산이 소요되므로 단기대책과 장기대책으로 구분하여 추진하기로 합니다. 개선 대책은 사업 시행주체인 우리공사와 시화호유역 관할 지자체에서 총 4896억원을 투자하여 추진하기로 했어요.

 

‘시화호 수질 개선대책’을 발표할 때 대책의 일환으로 수질 개선이 완료되는 5년 동안 한시적으로 배수갑문을 통한 해수유통을 실시한다는 단기대책을 제시했으나, 방류로 인한 어장 상실 등 주민들의 피해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어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논란이 뒤따랐습니다. 환경단체와 정부 간의 힘겨루기가 장기화되자 1996년 7월 정부는 배수갑문 개방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우리공사 주관으로 「배수갑문 조작관리규정」을 제정하기로 결정하게 되었어요.

 

이에 따라 우리공사는 한국물학술단체연합회에 규정을 제정하기 위한 연구용역을 의뢰하는 한편, 시화호 방류가 인근 해역에 미칠 영향을 조사하고 외해의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한국해양연구원에 조사용역을 의뢰하게 되지요. 한국물학술단체연합회가 연구한‘배수갑문 시험개방계획’에 따라 1997년 7월부터 1998년 12월까지 배수갑문을 시험 개방하여 관계 전문가들로 하여금 시화호 내·외해의 환경영향을 조사하도록 했습니다. 1년 6개월에 걸쳐 시행한 배수갑문 시험개방 및 시화호 내·외해 환경영향 조사 결과에 따라 1999년 1월「시화방조제 배수갑문 조작관리규정」이 최종 확정되었지요.

 

 

[시화호 수질개선 수치]

 

 

- 살아나는 시화호

 

시화호의 배수갑문 개방이 시작된 1997년 10월부터 2000년 7월까지 관계부처 간 협의가 마무리되자 2000년 12월 환경부는 시화호를 담수호에서 해수호로 변경하기로 결정하고 수질개선대책을 마련했습니다. 2002년 12월 정부는 ‘시화호 종합관리계획’을 의결하여 시화호 수질개선에 박차를 가하게 되죠. 몇 차례 변경을 거쳐 2004년 9월 최종 확정된 ‘시화호 종합관리계획’에 따라 시화호 수질 개선사업은 3개 분야 34개 개선사업으로 추진되었으며, 총 사업비 9522억원 중 2005년 말까지 4700억원이 투입되었습니다. 대책이 시행된 1997년을 정점으로 시화호 수질은 급속히 개선되기 시작하여 1999년 이후부터는 COD 4~5ppm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습니다. 수질 개선에는 배수갑문 개방을 통한 해수 유출입이 가장 크게 기여했답니다.

 

또한 해수 유출입과 함께 유역 내 하수관거를 정비하고 오염된 하천을 정화했어요. 시화·안산지구의 하수관은 빗물관과 오수관을 분리·시공하여 유역에서 발생하는 생활하수와 산업폐수는 오수관을 통해 하수처리장으로 유입되도록 했었는데요. 그러나 시공 또는 관리과정에서 발생한 하수관 도접, 공단 내 배출업체의 폐수 무단방류 등으로 생활하수와 산업폐수가 하천으로 유입되어 시화호의 수질을 악화시켰어요. 특히 인근 농촌지역의 오폐수가 정화되지 않은 채 유입되는 동화천·삼화천은 수질이 개선되지 않고 있는 상태입니다. 현재 이들 하천 하류에는 수질 개선대책의 일환으로 인공습지를 조성하여 운영하고 있어요.

 

2001년 해수호로 전환한 이후 악화되었던 시화호 수질은 빠르게 개선되고 있는데요. 때를 맞춰 시화호 남쪽 간석지에서 발견된 공룡알화석, 천연기념물을 포함한 철새, 넓게 퍼져 자라나는 염생식물과 갈대숲, 수위조절을 통해 다시 살아나고 있는 갯벌생물 등은 시화호가 ‘생명의 호수’로 되살아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시화호에 생명이 복원되자 사람들도 찾아들기 시작하여 수변에서 레저생활을 즐기는 등 시화호와 유역 일대가 친수·수변공원으로 변화하고 있어요. 시화방조제의 내해 쪽에는 폭 3m, 길이 12㎞에 달하는 Max flex court를 조성해놓았지요. 주말이면 많은 시민들이 이 길을 따라 산책을 하거나 인라인 스케이트 또는 자전거를 타면서 여가를 즐기고 있고요. 시화방조제는 대부도까지 이어져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답니다.

 

 

 

 

여기까지 안산시화지구개발사업과 시화호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살펴보았는데요. 한때 죽음의 호수로 불리는 지경까지 이르렀다가 이제는 생태계의 보물창고로 거듭난 시화호의 모습이 놀랍기만 하네요. 다음 시간에는 한국수자원공사의 지방상수도사업에 관한 내용을 알아보기로 합시다!

 



 

 





 

- 시화호 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