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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한 수다/건강한 물 이야기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결국 강은 사랑이었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결국 강은 사랑이었다

 

 

올해 겨울 극장가를 보면 의외로 ‘기근’처럼 보이는데 착시현상일까요? 가을 비수기 땐 ‘인터스텔라’라는 의외의 대작이 ‘홍수’처럼 키워드를 잠식하더니 정작 방학을 맞은 대목에 기대한 상영작 중 상당수는 흥행과 비평 양쪽에서 고전하는 모습입니다.

 

그런 와중에 뜻밖의 ‘단비’도 있었죠. 바로 오늘 소개할 2014년 11월 27일 개봉작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입니다. 독립영화로서 이런 작품이 얼마만일까요. 지난 성탄절엔 워낭소리가 296만 관객을 제치고 사상초유의 독립영화 300만 관객 돌파 초읽기에 들었습니다.

 

쓰고 나니 기근, 홍수, 단비... 전부 물과 관련 있는 단어들이네요. 이 얼마나, 언어생활에서도 친근하고 익숙하단 말인지!

 

강원도 횡성에서 76년째 연인으로 살아온 98세의 할아버지와 89세의 할머니가 있습니다. 할머니 나이 열셋, 할아버지 나이 스물둘에 만나 정말로 백년해로한 이 두 사람은 한복으로 커플룩을 맞추고 두 손 꼭 잡으며 걷습니다. 봄엔 꽃장식, 여름엔 개울가, 가을엔 낙엽, 겨울엔 눈, 그것만으로도 이 세상은 늘 신혼의 시간이고 아름다운 나날입니다. 육체는 열화됐을지언정 주름살을 어루만지는 내면은 여전히 사랑에 빠진 열세살 소녀와 스물둘 장정입니다.

 


 

 

 

영원히 반복될 것 같은 그 아름다운 세상에, 영화는 이별을 고하려 합니다. 할아버지가 아끼던 강아지 ‘꼬마’가 세상을 떠납니다. 땅에 묻고 돌아온 날부터 할아버지도 앓기 시작합니다. 쇠약해진 할아버지를 두고 홀로 남은 또 다른 강아지를 돌보는 할머니, 이제 꼬마에 이어 한 번 더 이별을 예감합니다.

 

심플한 흐름 속에도 영화가 주목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것이 실시간으로 그대로 담긴 실화란 겁니다. 그리고, 이 영화엔 알게 모르게 사람을 몰입시키는 장치가 있습니다. 바로,입니다. 할아버지 기침소리, 홀로 남겨진 강아지. 이를 접하는 할머니가 계신 마당엔 비가 내립니다. 지난 76년간의 회상 속에서도 물가가 있습니다. 물장구치며 놀던 개울가, 함께 기대 앉아 바라보던 강물 모두 두 사람의 기억에 남겨진 배경입니다.


이제 그 강물은 현실이 되어 있습니다. 할머니가 혼자 강물을 쳐다보는 날은 오늘입니다. 두 사람이 수시로 건너던 강은 과거입니다. 이제 남편 홀로 건너가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그 강은 내일입니다. 공무도하가에서 따 온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라는 제목은 참 잘 지은 제목입니다. 그만큼 폐부를 찌를 것이 또 어딨단 말인가요.

 

영화 속에서 물은 삶입니다. 그 삶은 기쁜 날로 점철되어 있고요. 때문에 이것이 죽음과 이별로 돌아오면 더욱더 깊고 차갑게 느껴집니다. 그것이 차갑게 찌르면 찌를수록 세상은 그만큼 아름다웠다는 반증이 됩니다. 세상에 이만큼 깊은 것을 담는 자연적 배경도 없을 겁니다.

 

실제로 영화 촬영 중 조병만 할아버지가 별세했습니다. 물을 배경으로 하고 강을 제목으로 삼은 이 작품은 그렇게 환타지 같던 현실 속 연인에게 더 이상의 환타지는 배제하면서 마무리됐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렇기에 영화가 완벽한 해피엔딩이라는 사실입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릿의 로미오와 줄리엣(1995)을 보면 이들의 만남 또한 물과 인연이 깊습니다. 수족관에서 3초간 눈을 마주치면서 사랑의 불을 지폈죠다. 흔히들 사랑은 불꽃 같다건만 이들도, 저 노부부도 그 사랑 속엔 물을 담고 있습니다.


저 세익스피어의 비극적 커플이 바라마지 않던 그 날의 결말은 무엇일까요. 바로 이 조병만 할아버지와 강계열 할머니가 아닐까요. 76년간 해로하며 꽃처럼 살았고 자연스럽게 물에 띄워 만남을 정리하는 이들, 생각해보면 관객에게 저 제목은 할아버지를 향한 것이 아니라, 홀로 남은 할머니에게 ‘아직은...’하며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할머니는 조금 더 남아 우리에게 그 여운을 전해주소서 하고 바라게 됩니다. 맑은 물을 마시고 맑은 물에서 뛰놀며 건강하게 사랑했고 건강하게 장수한 이들을 보면서 결국 물은 죽음도 아니고, 이별도 아닌, 행복과 사랑의 키워드를 담았음을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