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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익한 수다/워터카페

5화] K-water가 어떻게 구미공업단지를 건설했을까?

 

 

 

K-water가 어떻게 구미공업단지를 건설했을까?
-전자산업의 메카, 구미공업단지 건설 이야기

 


1960년대 말부터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한 정책이 있답니다.

바로 전자공업 육성 정책인데요.

갈수록 치열해지는 국제시장에서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 모색된 것입니다.

그런데 전자공업 육성 정책의 추진과정의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바로 K-water가 했다는 사실 알고 있나요?

그럼 어떻게 K-water 전자산업의 초석을 다지게 되었는지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함께 알아볼까요?

 

 

 

 

불황 극복 위해 전자공업 육성 강력 추진

 

정부는 1960년대 말부터 전자공업 육성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해나갑니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국제시장에서 경쟁력 확보가 시급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최첨단 산업인 전자공업을 수출 전략품목으로 육성하여 중진국 대열에 진입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으로 추진되었는데요. 때문에 전자공업 육성을 국가경제의 핵심과제로 지정된 것입니다. 

 

1970년대 초, 우리나라 국가경제는 세계적인 불황으로 큰 위기를 겪었답니다. 경공업 위주의 취약한 국내 경제구조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오랫동안 경제 성장이 둔화되고 있었으니까요. 국내의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선진 각국은 다양한 무역장벽을 쌓아 나갑니다. 개발도상국의 수출은 갈수록 어려워지는 상황이었죠.

 

 

 

 

수자원개발공사, 구미지역 산업기지 제안 

 

더욱이 1973년 제1차 석유파동이 일어나게 되는데요. 이 상황에서 국내 경제는 그야말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게 됩니다. 따라서 정부는 팔 벗고 나서서 전자공업과 함께 중화학공업을 육성할 산업기지 건설에 착수하게 된 것이랍니다.

 

정부는 이에 대한 본격적인 시동을 걸기 시작합니다. 제일 먼저 ‘전자공업 진흥 8개년계획’을 수립합니다. 그리고 전국 각지를 대상으로 전자공업전문단지 입지조사에 착수하게 되지요. 이에 따라 수자원개발공사는 4대강유역 조사사업 자료를 토대로 토지 조사를 검토하기 시작했답니다. 그리고 구미지역이 최적지(最適地)라는 결론을 짓고 안경모 사장이 대통령에게 건의를 했습니다.

 

 

 

 

 

 

 

전자공업단지의 최적의 요건 갖춰

 

전자제품의 핵심부품인 반도체는 염분에 노출되면 쉽게 부식이 된답니다. 때문에 전자공업단지는 반드시 내륙에 설치해야 하는데요. 구미는 낙동강을 끼고 있어 용수 공급이 용이한 이점이 있었답니다. 더군다나 인접한 경부선 철도와 경부고속도로를 통해 원활한 물류를 기대할 수 있었지요.

 

뿐만 아닙니다. 넓고 값싼 부지를 확보할 수 있는 데다 대구·김천 등 인근에 풍부한 노동력이 잠재하고 있었답니다. 특히 상류의 안동댐 건설로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용수 공급이 가능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요건은 다 갖추고 있었지요.

 

수자원개발공사의 의견에 따라 정부는 1970년 8월 청와대에서 열린 수출진흥확대회의에서 구미지역에 전자공업단지를 조성하기로 최종 의결을 한답니다. 그리고 1972년 12월 청와대에서 관계 장관 회의에서 구미 전자공단 건설을 수자원개발공사에서 시행하도록 결정을 내립니다. 이때부터 수자원개발공사의 본격적인 국가 산업 개발 역량이 발휘된답니다. 

 

 

 

 

 

<구미공업단지 준공식>

 

구미 전자공단 - 우리나라 전자공업의 메카의 탄생

 

수자원개발공사는 먼저 합동조사단을 구성해 현지조사를 마친 뒤 기본계획을 수립합니다. 그리고 정부로부터 시행승인을 얻은 뒤, 1973년 1월 현지측량을 마치고 제1단지 건설에 착수합니다. 제1단지는 총 계획면적 1,042만㎡ 중 낙동강 하천부지인 백사장과 습지 452만여㎡를 매립하는데요. 이곳에 단지를 조성하는 한편, 하천을 정비하고 제방을 쌓아 홍수를 예방하는 방대한 사업을 함께 진행한답니다. 

 

공사 진행에 박차를 가하면서 점점 그 윤곽이 드러나게 되는데요. 수자원개발공사는 5,900m의 제방축조공사를 돌관공사로 감행하는 등 9개월 만에 제1단지 조성사업을 완공합니다. 그리고 제1단지에 이어 1977년 7월부터 1982년 12월까지 제2단지, 1987년 7월부터 1993년 말까지 제3단지 조성사업을 마친답니다.

 

구미전자공단 건설은 수자원개발공사가 산업기지 개발공사로 재편되어 여천·창원·온산공업단지와 안산 신도시를 건설하는데 시금석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구미공단은 우리나라 전자공업의 메카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지금까지도 국가경제 발전에 큰 축을 담당하고 있답니다.

 

 

[이미지 출처 – K-water 제공]

 

 

 

수자원개발공사는 단순히 물 자원 산업에만 골몰한 게 아니랍니다.

국가 전체적인 산업 구조를 위한 큰 밑그림을 그리는데도 모든 역량을 쏟아 부었으니까요.

국가 산업의 발달은 물 산업 발전과도 가장 직접적인 영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아주 큰 밑그림부터 세부적인 사안에 이르기까지

K-water는 우리나라 산업에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자임하게 된 것이랍니다.

우리나라의 산업발달과 맥을 같이 해온 K-water의 흥미진진한 활약상!

다음에도 꼭 K-water의 이야기와 함께 해주세요!